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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노트

관심과 존중



하브루타를 이야기하다보면 교육에 관한 것과 함께 우리네들이 소통을 못하는 원인을 알게된다. 소통, 대화하는 방법을 모른다. 아니, 그래도 이제는 모르는 시기는 지났다. 하지만, 그 원일을 생각하기보다 단순 해법을 찾고 있다.


내가 생각하는 가장 큰 원인 중 하나는 ‘관심’이다. 관심이 없다고 할 수는 없다. 우리는 서로 관심을 갖고 있다. 부모, 자식 사이의 관심은 그 중 최고일 것이다. 우리들의 관심은 믿음, 격려로 표현되기도 하지만 걱정, 불안 등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우리 부모님 세대는 일제, 전쟁, 등의 험난한 시기를 체험하신 분들이다. 당신들께서 세상을 걱정과 불안의 눈으로 보는 것은 당연한 것일 수도 있다. "위험한 세상 속의 소중한 자녀” 이것이 부모님들이 보는 우리 사회일 것이다. 하지만 세상은 변하고 변했다. 세상이 변함으로써 지난 시대의 위험요소는 사라졌지만,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는 말처럼 다른 작은 위험에 대해서도 걱정과 불안은 그대로거나 더 커진듯 하다. ‘시간이 약’이라는 말처럼 시간이 지나면 걱정과 불안도 분명 사라질 것이다. 하지만 그 시간이 우리 예상보다 계속 길어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 걱정과 불안을 사라지게 어떤 노력을 해왔을까? 나 역시 이해는 하지만 사라지게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은 안해왔다. 시간이 해결해줄 수 있지만, 그 시간은 길어지고 있고, 긴 시간 속에서 부모님은 나이들어 가신다. 나역시 요즘에야 생각하는 것이다. 자녀는 부모탓이라고 시작한 생각이 부모님과의 문제에도 그대로 재현되고 있다. 나는 부모님에게 얼마나 관심을 가지고 있을까? 이런 걱정과 불안의 관심은 안정성을 최우선으로 지향하게 만든다. 사회에서 가장 안정적이 삶은 어떤 것일까를 생각하면 대부분의 상황에 대비할 수 있는 공부, 성적이 중요하게 된다. 위험에 대비하는 것이 최선일까? 내가 생각하는 최선은 위험을 제거하는 것이다. 위험을 제거하기 위한 생각과 실천을 회피하고 위험속에서 살아갈 방법을 가르친다. 세월호 이후 부활한 민방위 훈련, 그리고 각종 안전 훈련이 학교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서바이벌 강요한다는 시각도 있지만, 그 시각의 이들은 위험을 제거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고 있을까? 위험을 놓아둔 상태로 아이들을 놓아두는 것은 더 큰 잘못일 것이다. 관심이 지나치지 않기 위해서는 ‘그러지 마세요’만으로는 부족하지 않을까? 편안한(?) 관심을 주고 받을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얼마전까지 나는 부모들이 ‘관심이 없다’라고 생각하는 편이었다. 관심이 없는 것이 아닌 관심의 표현이 상황적 이유로 잘못된 것이 아닐까? 어떻게 하면 과거, 현재, 미래에 대한 인식을 공유할 수 있을까에 대한 생각이 필요하다.


또 하나의 원인은 ‘존중’이다. 존중에도 걱정과 불안이 영향을 미친다. 작고 여린 자녀에게 너무나 힘든 사회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래 언젠가 자녀는 혼자 세상을 헤쳐나가야 한다. 갑자기 혼자임에 힘들게 하기보다는 미리 준비해야하지 않을까? 이를 위해서도 존중은 태어날 때부터 필요하다. 아이가 혼자 세상을 사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존중한다면 상대에 대한 다름의 이해는 조금 더 쉽지 않을까?


나, 너 둘 사이뿐 아니라 우리는 사람들 모두가 각각의 개인임을 잊곤한다. 좋아한다, 사랑한다는 말로 한쪽이 다른쪽을 포함하려 한다. 그 사람 자체를 더 존중하는 것이 좋아하고, 사랑하는 것이 아닐까? 사랑과 집착의 혼동은 부모에게 받은 혼란스런 사랑때문일 수도.


어릴 때부터 존중받고 존중하며 나의 생각만큼 상대의 생각을 인정하고 받음이 있어야겠다. 공부, 교육에서 시작한 여러가지 생각이 우리 일상에 그대로 투영되어 있음에 놀라곤 한다. 그만큼 교육에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고 실천해야 함의 확신이 커져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