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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노트

부모는 이순신처럼? 선조처럼?

<참조 : 이순신과 선조의 차이점은?>


이순신과 선조는 상벌을 하는 평가 기준이 달랐다. 전쟁, 업무, 공부 등 모든 일에 대해 평가하고 상을 주거나 벌을 주거나 하는 것은 오래되고 오래된 일이다. 그리고 그 상벌의 평가 기준을 어떻게 할 것이냐는 어렵고 중요한 문제다. 그 중 이순신과 선조은 평가 기준이 서로 달랐다.


선조 뿐만 아니라 많은 이들이 상벌의 평가 기준으로 결과를 이용했다. 그 이유는 그것이 공정해 보인다는 것이 하나이다. 기준을 정하기 쉽다는 것이 또 하나의 이유이다. 관리의 편의에서 결과는 좋은 평가 기준이다. 하지만 결과만을 평가 기준으로 하게되면 선조와 같은 현상이 나타난다. 결과를 위해 다른 이가 한 노력의 결과를 훔치는 것이다. 시험 이야기를 하며 빠지지 않는 컨닝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요즘은 가끔 성적을 위해 범죄, 폭력 등이 일어난다는 뉴스도 볼 수 있다. 또 누군가는 열심히 노력하고 결과에 이르지 못하는 일도 일어난다. 결과를 평가 기준으로 하면 결과를 만들지 못한 노력을 헛수고가 된다. 이런 경험은 노력을 등한시하고 결과를 훔치게 만든다.


이순신은 과정, 노력을 평가 기준으로 이용했다. 얼마나 열심히 싸웠는지가 평가 기준이다. 과정, 노력을 평가 기준으로 할 때 여러운 점은 명확한 기준점을 설명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선조의 경우는 수급의 수를 세는 것으로 간단하고 확실하게 성적을 줄 수 있다. 과정이나 노력은 그 사람을 알고 관심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명확한 기준점은 절대로 설정할 수 없다. 상대 평가, 순위를 중요시한다면 이런 평가 기준은 오히려 문제가 된다. 일례로, 대학수학능력시험(이후 수능)에서 문제 하나, 점수 1점, 소수점 점수 차이로 평가가 달라진다면 명확하지 않은 기준은 인정되지 않는 것이다.


부모는 어떻게 자녀를 생각해야 할까? 학교, 교육시스템은 결과로 평가하는 것이 어쩔 수 없는 현실이라고 말한다. 어느정도는 사실이다. 하지만 부모도 그래야 할까? 부모에게 교육은 자녀의 성적 순위가 아니라 자녀의 성장, 발전을 위한 것이다. 사람을 성장시키는 것은 결과가 아니라 그 결과에 이르기까지의 노력이다.


우리의 교육은 무엇을 목적으로 하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