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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도서

고리오 영감 / Le Pere Goriot

지은이 : 오노레 드 발자크(Honore de Balzac)

옮긴이 : 임희근

페이지 : B6 견장정 / 360 면

출판사 : 열린책들




인간 희극의 길들이 만나는 네거리 광장 『고리오 영감』


18세기 프랑스를 대표하는 소설가이자 사실주의 문학의 창시자인 오노레 드 발자크의 『고리오 영감』이 임희근의 번역으로 출간되었다. 1834년 12월부터 『파리 평론Revue de Paris』지에 연재되기 시작하여 1835년에 책으로 출간된 『고리오 영감』은 발자크의 방대한 작품 세계 속에서 마치 커다란 <네거리>와 같은 작품이다. 발자크가 이 소설을 집필하던 시점의 프랑스 사회는 1830년 7월 혁명을 거치면서 왕정복고 시대의 폐쇄된 사회가 개방되는 듯하면서 일견 모든 것이 가능한 새 시대가 열리는 듯했지만, 곧 구질서로 회귀하면서 새 시대의 열망은 좌절되었다. 그러나 7월 혁명은 19세기 전반부의 정치, 문화, 정신사의 전환점이 되었다. 그러한 시대적 상황은 발자크의 소설 세계에 자주 등장하는 주제인데, 『고리오 영감』 속에도 권력에의 의지, 사회, 돈, 출세 지상주의, 외곬의 열정(집착) 등과 같은 주제가 모두 응축되어 있다. 또 파리 상류 사회로의 진출을 꿈꾸는 라스티냐크의 <성장 소설>이자 근대 사회를 상징하는 공간인 파리의 영화와 악덕, 금전만능의 사회상을 고리오라는 인물의 몰락을 중심으로 통렬히 파헤친 <사회 소설>이기도 하다.


「나는 지금 그야말로 천재가 되는 중이니, 축하해 줘!」  - 드 발자크


발자크는 19세기 프랑스 사회와 인간 군상의 전형을 그리고자 했다. 이를 위해 온갖 직업과 성격을 지닌 수천 명의 인물을 작품 속에 담아냈고,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을 세세히 묘사하여 그 속에서 인간의 특성을 밝혀 나갔다. 또한 주요 인물을 후속 작품에 다시 등장시키는 <재등장> 기법을 통해 작품과 작품, 인물과 인물을 유기적으로 연관 짓고 통일성을 부여하였다. 이렇게 현실 못지않게 완벽하고 활기 있는 세계를 재창조해 보이려는 발자크의 야심찬 계획은 약 90편의 소설로 구성된 <인간 희극>으로 완성되었다.


〈인간 희극〉을 구성하는 작품들은 세 갈래로 나뉜다. 첫째가 〈풍속 연구〉로, 여기에 들어가는 것이 〈사생활의 정경들〉, 〈지방 생활의 정경들〉, 〈파리 생활의 정경들〉, 〈정치 생활의 정경들〉, 〈군인 생활의 정경들〉, 〈전원 생활의 정경들〉이다. 둘째는 〈철학적 연구〉로 사물의 〈원인〉을 파헤친 소설들이며, 셋째가 〈분석적 연구〉로 삶의 〈원리들〉에 천착하는 소설들이다. 『고리오 영감』은 이 중 첫 번째인 〈풍속 연구〉, 그중에서도 〈사생활의 풍경들〉의 갈래에 들어가는 작품이다.


『고리오 영감』은 발자크가 〈인물의 재등장〉이라는 야심 찬 기법을 실현한 첫 소설이라 할 수 있다. 주인공 라스티냐크는 이미 그전에 쓴 소설 『상어 가죽La Peau de chagrin』에도 등장한다. 그리고 보트랭, 뉘싱겐 부인, 보세앙 부인, 의사 비앙숑, 랑제 공작 부인 등 주요 등장인물들과 라스티냐크는 『고리오 영감』 이후 발표된 소설들에도 나온다. 그러니 『고리오 영감』이야말로 발자크의 소설 세계를 열어 주는 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꾸준히 발자크를 읽어 가는 독자라면 이 소설에서 처음 만난 등장인물들을 그 뒤에 다른 작품들 속에서 다시 만나며 더욱 심층 탐구할 수 있다. 등장인물의 측면에서만 보더라도 『고리오 영감』은 〈인간 희극〉을 구성하는 신경줄의 핵심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19세기 파리뿐 아니라 21세기 현재에도 <재등장>하는 발자크의 살아 있는 인물들

앞서도 언급했지만 이 소설의 주제를 한마디로 압축하면 돈과 무모한 열정이다. 여기서 돈은 처음부터 구체적이고 정확한 숫자로 표시된다. 고리오 영감의 하숙비와 연금, 라스티냐크가 고향집에서 한 달에 송금받는 액수, 이 모든 것이 때로 따분하고 지겨울 정도로 적나라하게 표현된다. 금전 문제와 관련되지 않은 고리오 영감을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모든 것은 영감의 남은 연금 문제, 빚 문제, 딸들 대신 갚아 주는 어음 문제, 심지어 얼마 남지 않은 값나가는 물건을 전당포에 가서 돈으로 바꾸는 문제 등과 사사건건 연관된다.

소설 첫 부분부터 사회적인 두 공간이 서민들의 공간(보케 하숙집 식당)과 사교계의 살롱(보세앙 부인의 집)으로 대조되면서, 독자는 이 두 공간이 주인공이 〈지금 몸담은 곳〉과 〈앞으로 몸담고 싶어 하는 곳〉을 대표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전자에서 후자로 이행하는 주인공은 결국 범속하고 비천한 하숙집에서나, 사교계의 으뜸가는 우아한 공간에서나 똑같은 교훈을 얻을 뿐이다.


예컨대 고리오의 재산을 탐내 한때는 짝이 되기를 꿈꾸지만 노인이 빈손이 되자 가차 없이 경멸하는 보케 부인의 모습이나 지참금을 위해 대가문의 딸과 결혼하는 다주다 후작 같은 귀족의 모습은 별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다주다 후작에게 배신당한 귀족 부인의 눈물을 구경하러 무도회에 몰려드는 사교계 속물들의 잔혹성은 고리오를 멸시하고 그의 죽음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하숙인들의 잔인함과 일치한다. 보세앙 부인 집에서 아직 애송이인 라스티냐크가 부인들의 환심을 사려고 쏟아 놓는 감언이설이나 보케 하숙 식탁에 둘러앉은 하숙인들의 바보 같은 농담들이나 우매하기는 마찬가지다.


우아함으로 포장된 인물이든 보트랭처럼 평민의 탈을 쓴 범죄자이든, 결국 라스티냐크에게 들려주는 말은 같다. 결국 사회는 가차 없이 악랄한 것이고, 그에 대응하는 법은 그 사회를 〈정복〉하는 것이라는 말이다. 그래서 발자크는 소설의 마지막을 다음과 같이 마무리한다.


혼자 남은 라스티냐크는 묘지의 높은 언덕 쪽으로 몇 걸음 걸어 올라가, 등불이 켜지기 시작하는 센 강의 양쪽 기슭을 따라 구불구불 누워 있는 파리를 보았다. 그의 시선이 거의 탐욕스럽게 집착한 곳은 방돔 광장의 기둥과 앵발리드의 둥근 지붕 사이, 그가 뚫고 들어가고 싶어 했던 그 멋진 사교계 사람들이 살고 있는 곳이었다. 웅웅거리는 벌집 같은 이곳에 그는 미리 꿀을 빨아내기라도 할 듯한 시선을 던지며 이 거창한 말을 던졌다. 


「자, 이제 파리와 나, 우리 둘의 대결이다!」  - 본문 334면


하지만 발자크의 인물들은 못마땅한 사회를 파괴하는 혁명가도 아니며 그 사회를 피해 숨는 은둔자도 아니다. 〈인간 희극〉의 여러 작품에 출몰하는 주요 인물 보트랭도 마찬가지다. 탈옥한 죄수의 신분을 숨기고 사회의 변방에서 살아가며 사회를 증오하고 경멸하고 그 모순을 폭로하지만 그는 사회를 파괴하는 혁명가는 절대 아니며 오직 사회를 이용해서 자기 이득을 얻어 내는 것이 목적일 뿐이다. 결국 〈인간 희극〉 전체를 움직이는 동력이란 〈권력에의 의지〉라고 할 수 있으며, 이는 바로 당시 발자크가 속한 계층인 부르주아지의 상승 의지와 연결된다.


지은이 오노레 드 발자크Honore de Balzac(1799~1850)

19세기 프랑스를 대표하는 소설가이자 사실주의 문학의 창시자로 전 세계 문학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오노레 드 발자크는 1799년 5월 20일 프랑스 중부 도시 투르에서 태어났다. 파리 소르본 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하고 법률 사무소와 공증인 사무실에서 수습사원으로 일했으나, 문학에 대한 열정으로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작가의 길을 선택했다. 첫 작품인 비극 『크롬웰』을 포함, 가명으로 발표한 『스테니』, 『팔튀른』 등 여러 편의 소설들이 그다지 주목을 끌지 못하자 출판업과 인쇄업에 뛰어들어 빅토르 위고 등의 작가와 교류를 갖게 되었다.

그러나 사업에도 실패하여, 평생 이 빚을 갚기 위해 하루 열 시간 이상 글 쓰는 생활을 이어 나가야만 했다. 1829년 30세의 발자크는 처음 본명으로 역사소설 『올빼미당』을 발표하여 주목받기 시작했고, 이후 많은 신문과 잡지에 소설과 희곡을 기고하던 중 소설 『상어 가죽』(1831)이 대성공을 거두면서 문인으로서 탄탄한 지위를 확보하게 되었다.


발자크는 19세기 프랑스 사회와 인간 군상의 전형을 그리고자 했다. 이를 위해 온갖 직업과 성격을 지닌 수천 명의 인물을 작품 속에 담아냈고,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을 세세히 묘사하여 그 속에서 인간의 특성을 밝혀 나갔다. 또한 주요 인물을 후속 작품에 다시 등장시키는 <재등장> 기법을 통해 작품과 작품, 인물과 인물을 유기적으로 연관 짓고 통일성을 부여하였다. 이렇게 현실 못지않게 완벽하고 활기 있는 세계를 재창조해 보이려는 발자크의 야심찬 계획은 약 90편의 소설로 구성된 <인간 희극La Comedie humaine>을 탄생시켰다. 이것은 인간 사회에서 일어나는 희비극, 즉 인간의 드라마를 재현한다는 의미에서 붙여진 제목이다. 이 불멸의 야심작은, 구상 당시 발자크 스스로 <지금 그야말로 천재가 되는 중>이라고 표현했던 것처럼, 단테의 『신곡』과 대척점을 이룰 만큼 문학사에 위대하고 놀라운 사건으로 남았다. 애초 계획했던 137편 모두를 완성하지는 못한 채 51세의 나이로 사망한 발자크는 그의 작품을 통해 프루스트, 졸라, 디킨스, 플로베르, 헨리 제임스, 이탈로 칼비노 등의 작가뿐만 아니라 프리드리히 엥겔스 같은 사상가에게도 깊은 영감을 주었으며, 오늘날 여전히 전 세계 작가들로부터 존경을 받고 있다.


1834년 12월부터 『파리 평론』지에 연재되기 시작하여 1835년 출간된 『고리오 영감』은 발자크의 방대한 소설 세계를 열어 주는 신호탄 같은 작품이다. 발자크의 작품 세계에서 뼈대를 이루는 생각과 이야기, 그리고 <인간 희극>을 채우는 주요 등장인물들을 이 안에서 모두 만나게 되기 때문에, 발자크의 세계를 더욱 빨리, 수월하게 파악하게 해주는 대표작 중에서도 으뜸이라 할 수 있다.

그 외 다른 작품으로는 『부부의 평화』, 『곱세크』, 『사막의 열정』, 『루이 랑베르』, 『외제니 그랑데』, 『시골 의사』, 『세라피타』, 『랑제 공작 부인』, 『절대의 추구』, 『골짜기의 백합』, 『피에레트』, 『집시의 왕자』, 『지방의 뮤즈』,  『잃어버린 환상』, 『창녀들의 흥망성쇠』 등이 있다.


옮긴이 임희근

1958년 서울에서 출생하여, 서울대학교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하였으며, 프랑스 파리3대학교에서 불문학 석사, 동 대학원에서 박사 과정을 수료하였다. 현재 전문 번역가이자 출판 기획 번역 네트워크 <사이에> 대표로 일하고 있다. 논문으로 「장 지오노의 소설 공간」, 「플로베르의 <감정 교육>에 나타난 소설 공간」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는 앙리 프레데리크 블랑의 『저물녘 맹수들의 사움』, 『잠의 제국』, 에밀 졸라의 『살림』, 디팩 초프라의 『성공을 부르는 마음의 법칙 일곱 가지』, 베르나르 그랑제의 『우울증』, 다니엘 페낙의 『독재자와 해먹』, 보리스 시륄닉의 『불행의 놀라운 치유력』, 앙드레 고르의 『D에게 보낸 편지』 등이 있다.